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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야구

마지막까지 현장을 지킨 야구인, 김민재 코치를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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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김민재 코치가 14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53세.
한국 야구의 한 시대를 함께했던 유격수이자 지도자로서,

그는 끝까지 야구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1️⃣ 롯데의 마지막 우승 멤버, 김민재라는 이름

고 김민재 코치는 부산공업고를 졸업한 뒤 1991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이듬해인 1992년, 롯데의 마지막 한국시리즈 우승 멤버로 이름을 남겼다.

 

프로 3년 차였던 1993년부터 주전 유격수로 자리 잡으며
2001년까지 롯데 내야의 중심을 지켰다.


이후 SK 와이번스(현 SSG), 한화 이글스를 거쳐
2009년 현역 은퇴까지 19시즌 동안 그라운드를 누볐다.

2️⃣ 국가대표 유격수로 남긴 발자취

김민재 코치는 단순한 구단의 프랜차이즈 선수를 넘어
국가대표 유격수로도 한국 야구의 상징적인 장면들을 함께했다.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 신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전승 금메달.

 

말년 한화 소속 시절 대표팀에 발탁돼
국제 무대에서 한국 야구의 저력을 보여주는 데 힘을 보탰다.

숫자로 남은 커리어, 그러나 숫자로 다 담기지 않는 선수

김민재 코치는 통산 2,111경기 출전,
타율 0.247, 1,503안타, 71홈런, 607타점, 174도루를 기록했다.

 

탄탄한 수비, 재치 있는 주루,
그리고 유격수라는 자리를 누구보다 성실하게 지켜낸 선수였다.

 

하지만 그의 진짜 가치는 기록보다
“기본을 지키는 야구”, “현장을 아는 유격수”라는 평가 속에 남아 있다.

3️⃣ 은퇴 이후에도 이어진 야구 인생

현역 은퇴 후에도 김민재 코치는 야구를 떠나지 않았다.
한화, KT, 두산, SSG 등에서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이어갔고,
김태형 감독의 부름을 받아 2024시즌을 앞두고 친정 롯데로 돌아왔다.

 

롯데 수석 코치로서 팀 재건에 힘을 보태던 그는
2024년 스프링캠프 도중 건강 이상을 느끼고 병원 검진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담도암이 발견됐다.

4️⃣ 병마 속에서도 지키려 했던 ‘현장’

치료를 위해 한동안 현장을 떠났지만,
롯데 구단은 계약을 유지하며 보직을 2군으로 조정하는 등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회복세를 보인 그는 다시 캠프와 현장을 오갔고,
2026시즌에는 재활군(드림팀) 코치를 맡길 계획도 세워져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말 병세가 급격히 악화됐고,
끝내 다시 그라운드에 서지 못했다.

5️⃣ 마지막 길

롯데 구단은 현재 장례 절차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빈소는 부산시민장례식장 402호실,
발인은 16일 오전 6시 30분,
장지는 부산 영락공원이다.

Conclusion Summary

김민재 코치는 선수로서도, 지도자로서도
야구를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았던 인물이었다.

 

1992년 롯데의 마지막 우승,
국가대표 유격수로 남긴 국제대회 성과,
그리고 병마 속에서도 지키려 했던 현장까지.

 

그의 이름은 기록보다
한국 야구의 성실함과 책임감을 상징하는 이름으로 남을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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